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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협 항행 규칙 == 1955년 무렵부터 사비에트는 체르드와 라 마베라에 무기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사비에트 항구를 떠난 수송선은 중앙 해역을 가로지르고 포르틸락해협을 지나 내해의 항구로 들어갔다. 조차국들은 항만 사용 규칙으로 상선을 통제할 수는 있었지만, 조차국이 아닌 나라의 군함이나 호송 선단을 멈춰 세울 근거는 갖고 있지 않았다. 1957년 9월 조차국 회의는 루이나와 플로렌시아의 제안으로 '''해협 항행 규칙'''을 채택했다. 조차국이 아닌 나라의 군함은 해협을 지나기 30일 전에 조차국 회의에 통보해야 하고, 무기·탄약·군용 연료를 실은 상선은 조차국 순찰대의 검문을 받아야 하며, 이를 어기는 선박은 조차국 군함이 저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규칙은 체르드를 비롯한 소수의 반대 속에 다수결로 통과되었고, 흔히 '''9월 규칙'''이라 불렸다.[* 체르드 역시 조차국이었기 때문에 조차국 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질 수 있었다. 체르드는 이 규칙이 사비에트 무기 수송을 막기 위한 것이며, 결국 자국의 안보를 조차국 다수에 맡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규칙은 거센 반발을 불렀다. 사비에트는 이를 '해협 봉쇄의 합법화'라고 비난했고, 체르드와 라 마베라는 해협의 자유 통항 원칙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항의했다. 정작 해협의 주인인 콘스탄티노폴의 스타투드라 정부는 조차국들의 차관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해협의 규칙이 도시의 동의 없이 외국들 사이에서 정해졌다는 사실은 훗날 콘스탄티노폴이 [[오로아 조약]]의 해협 조항을 거부하는 근거가 되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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